
밀가루가 사무치게 그리운 밤, 두부 면으로 달래본 처절한 생존기
다이어트 선언과 동시에 가장 먼저 이별을 통보한 건 '면'이었습니다. 매콤한 비빔국수나 꾸덕한 크림 파스타가 주는 그 원초적인 쾌락을 끊는 건 정말이지 고문이었죠. 며칠간 밀가루 금단현상에 손을 떨다 결국 타협안으로 두부 면을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 사실 지난주에 큰맘 먹고 산 청바지 단추가 숨을 못 쉬겠다며 아우성치지만 않았어도, 제가 이런 '콩의 유혹'에 굴복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건강과 미각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했던 제 솔직한, 아니 조금은 처절했던 경험을 공유합니다.
쫄깃함은 어디에? 툭툭 끊어지는 낯선 배신감
포장을 뜯자마자 코를 찌르는 특유의 콩 비린내에 일단 멈칫했습니다. "이걸 정말 면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머릿속을 스쳤죠. 찬물에 박박 헹궈냈지만, 젓가락으로 집어 올린 면발은 기대했던 탄성 대신 툭툭 끊어지는 무심함을 보여주더군요. 툭. 면이 끊겼습니다. 그 순간 제 인내심도 함께 끊길 뻔했죠. 솔직히 첫 입을 넣었을 때 입안에서 모래알처럼 굴러다니는 그 까끌까끌하고 푸석한 식감은 도무지 적응이 안 됐습니다. 혀끝에 닿는 느낌이 마치 아주 얇은 종이를 씹는 것 같기도 하고, 물기 없는 스펀지를 씹는 것 같기도 해서 헛웃음이 나오더라고요.
보통 건강 관련 뉴스나 기사에서는 "두부 면은 저당질 고단백 식품이라 혈당 스파이크를 막아준다"며 입이 마르게 칭찬하지만, 사실 현장에서 이 질감을 이겨내는 건 순전히 '정신력' 문제입니다. 과학적인 이점은 머리로는 이해해도, 뇌는 여전히 "이건 가짜야!"라고 외치고 있으니까요. 저는 이 '날것의 식감'을 죽이기 위해 올리브유에 편마늘을 거의 튀기듯 볶아 향을 입혔습니다. 팬 위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마늘이 갈색으로 변해갈 때쯤 두부 면을 투하했죠. 기름의 고소한 향이 면의 거친 표면에 스며드니 그나마 낯선 질감이 조금은 유순해지더군요. 역시 기름은 배신하지 않습니다. 지방의 맛이 가미되니 비로소 '요리'라는 이름에 가까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소스의 힘으로 버티는 '가짜 면'의 미학
두부 면은 참 개성이 없습니다. 아니, 자기주장이 전혀 없어서 어떤 양념을 만나느냐에 따라 얼굴을 확 바꿉니다. 어느 날은 매운맛이 미치게 그리워 청양고추를 세 개나 썰어 넣고 시판 소스와 함께 달달 볶았습니다. 그런데 밀가루 면처럼 소스를 쭉쭉 빨아들이는 게 아니라, 면 사이사이에 소스가 전혀 배지 않고 겉도는 걸 보며 '아, 역시 이건 그냥 두부구나' 싶어 울컥하더군요. 프라이팬 위에서 면과 소스가 따로 노는 그 이질적인 풍경이란. 억지로 소스를 숟가락으로 떠서 면 위에 얹어 먹으며 마음을 다잡아야 했습니다.
그래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릇을 앞에 두니 마음이 조금 풀렸습니다. 눈이라도 속여보자는 심산이었죠. 붉은 소스에 돌돌 말린 면의 형상을 보고 있으니, 제 뇌가 "그래, 이게 파스타다. 지금 넌 파스타를 먹고 있는 거야"라고 스스로 최면을 거는 게 느껴졌습니다. 심리학적으로도 음식의 시각적 형태가 만족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잖아요. 식감은 어색할지언정 코를 찌르는 매콤한 향과 시각적인 충족감이 주는 일시적인 만족감, 그 '심리적 포만감' 하나로 버텼습니다. 입안에서는 콩 맛이 나는데 머릿속으로는 나폴리의 어느 식당을 상상하는 기묘한 경험이었지만요.
실패하며 깨달은 나만의 두부 면 생존법
혹시라도 두부 면을 일반 소면처럼 펄펄 끓는 물에 삶으려는 분이 있다면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습니다. 이미 가공된 상태라 오래 불 위에 두면 푸석함이 극에 달해 젓가락만 대도 가루가 될 지경이거든요. 제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찾은 최선의 방법은 차가운 비빔 양념입니다. 아삭한 오이와 상추를 과하다 싶을 만큼 때려 넣고 들기름을 두 바퀴 반 정도 크게 돌리면, 두부 면 특유의 텁텁함이 들기름의 윤기에 가려져 제법 먹을 만해집니다. 채소의 아삭한 식감이 두부 면의 퍽퍽함을 가려주는 '착시 효과'를 노리는 것이죠.
고백하자면, 저는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은 냉장고 속 두부 면을 보며 배달 앱의 '마라탕'이나 '불닭볶음면' 버튼 위에서 손가락을 떨곤 합니다. '이 귀찮은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그냥 오늘만 먹고 내일부터 다시 할까?' 매일이 갈등과 번뇌의 연속입니다. 사실 냉동실에 쟁여둔 두부 면이 아직 한 보따리인데, 가끔은 쳐다보기도 싫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라면을 먹고 잤을 때의 그 팅팅 부은 얼굴 대신 더부룩함 없이 가뿐하게 눈을 뜰 때면 이 퍽퍽한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아주 조금씩 실감합니다. 거울 속의 내가 조금은 덜 미워 보이는 그 찰나의 순간 때문에 오늘도 두부 면 패키지를 뜯게 되는 것 같습니다.
완벽하진 않아도, 나를 위한 기분 좋은 타협
결국 다이어트 식단은 완벽한 맛을 찾는 여정이 아니라, 내 몸이 견딜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찾아가는 타협 과정인 것 같습니다. 두부 면이 밀가루의 완벽한 복사판이 될 수는 없겠죠. 쫄깃한 식감을 기대한다면 차라리 일찍 포기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습니다. 하지만 죄책감 없이 '면 치기' 기분을 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내 몸을 소홀히 대하지 않았다는 위안을 준다는 점만으로도 꽤 괜찮은 동반자입니다.
너무 큰 기대보다는 "오늘은 단백질을 면 모양으로 즐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해 보세요. 가끔은 요리에 실패해서 젓가락을 내던지고 싶은 날도 있겠지만, 그런 소소한 분노와 실패도 결국 우리가 더 나은 몸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일부일 테니까요. 오늘 저녁, 냉장고 구석에서 잠자고 있는 두부 면을 꺼내 나만의 소박하고 처절한 실험을 시작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물론, 옆에 매콤한 겉절이나 짭조름한 단무지는 꼭 챙기시고요! 제 경험상 그게 없으면 이 수행을 끝마치기가 꽤 힘들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