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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 마셔도 살찌는 기분, 혹시 내 뱃속에 장내 미생물이?

by SBJY0909 2025. 12. 21.

장내 미생물

 

 다이어트를 하다 보면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순간이 찾아옵니다. 나는 풀만 뜯고 있는데, 옆자리 동료는 점심에 제육볶음을 싹싹 긁어먹고도 날씬하거든요. "너는 기초대사량이 높아서 그래"라고 애써 위로했지만, 며칠 전 우연히 읽게된 건강 칼럼 하나가 제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내 의지가 아니라, 내 장 속에 사는 '세입자(미생물)'들 때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죠.

소위 '뚱보균'이라 불리는 녀석들이 유독 많이 보유한 사람이 있다는데, 왠지 그게 딱 저인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더군요.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내 몸을 바꾸는 가장 조용하고도 꼬르륵거리는 전쟁, 마이크로바이옴 관리입니다.

 

뚱보균, 너 도대체 정체가 뭐니?

 사실 '뚱보균'이라는 게 학술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퍼미큐티스(Firmicutes)'라는 문에 속하는 세균들을 그렇게 부르더군요. 네이처(Nature) 같은 권위 있는 학술지에서도 비만인 사람과 마른 사람의 장내 세균 비율이 확연히 다르다는 연구가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이 뚱보균들은 우리가 먹은 음식에서 에너지를 아주 악착같이 흡수한다고 해요.

 

 남들은 그냥 배설해버릴 칼로리까지 이 녀석들이 "어림없지!" 하며 쏙쏙 빨아들여 지방으로 축적한다니, 소름 돋지 않나요? 내가 어제저녁 참지 못하고 먹은 치킨 한 조각이 유독 내 허벅지에만 달라붙는 이유가 설명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왠지 뱃속에서 이 녀석들이 기름진 음식을 기다리며 입을 쩍 벌리고 있을 것 같은 찝찝한 상상까지 들더라고요. 솔직히 이 핑계라도 있으니 제 식탐에 대한 죄책감이 조금 덜어지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내 탓이 아니야, 균 탓이야"라고 말이죠.

 

미끈거리고 시큼한 것들과의 사투

 뚱보균을 줄이고 날씬균(박테로이데스)을 늘리려면 유산균과 식이섬유를 먹어야 한답니다. 그래서 큰맘 먹고 그릭 요거트와 낫토를 샀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낫토의 첫인상은 최악에 가까웠습니다. 젓가락으로 휘저을 때마다 실처럼 늘어나는 그 끈적한 점액질은 마치 콧물 같기도 했고, 특유의 쿰쿰한 냄새는 며칠 신은 양말을 연상케 했으니까요.

 

 건강에 좋다니까 코를 막고 한 입 삼켰는데, 미끌미끌하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그 느낌이 정말이지 적응하기 힘들더군요. 그릭 요거트도 마찬가지였어요. 시중의 달콤한 요거트가 아니라 무가당 뻑뻑한 것을 샀더니, 입안에 텁텁하게 달라붙는 하얀 덩어리가 마치 지점토를 씹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도 뱃속의 뚱보균들이 괴로워할 거라 믿으며, 꿀 한 스푼의 유혹을 뿌리치고 억지로 삼켰던 그날 아침의 비장함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습니다.

 

채소를 먹었는데 왜 배는 더 빵빵할까

 유산균의 먹이가 된다는 식이섬유, 즉 채소 섭취도 늘렸습니다. 우엉, 연근, 브로콜리 같은 거친 채소들을 식탁에 올렸죠. 그런데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속이 편해지기는커녕 배가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는 '복부 팽만'이 찾아온 겁니다. 사무실 조용한 회의 시간에 뱃속에서 "꾸르륵, 콰르르" 천둥소리가 날 때마다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알고 보니 평소 안 먹던 식이섬유가 갑자기 들어오니 장내 미생물들이 과하게 발효를 일으키며 가스를 만들어낸 것이라더군요. '이게 명현현상일까, 아니면 그냥 내 소화기관이 약해 빠진 걸까?'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아삭아삭한 셀러리를 씹을 때마다 턱관절은 뻐근했고, 풀냄새 가득한 트림이 올라올 때면 "내가 지금 소가 된 건가" 싶은 자괴감도 살짝 들었어요. 건강해지는 과정이라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부룩하고 민망했습니다.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기분 좋은 가벼움

 그렇게 한 달 정도 끙끙대며 식단을 유지해 봤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체중계 숫자가 마법처럼 뚝 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몸무게는 고작 1kg 남짓 줄었을 뿐, 여전히 제 뱃살은 말랑말랑하게 잡힙니다. 하지만 분명히 달라진 건 '아침의 기분'입니다. 전날 밤 라면을 먹고 잤을 때 느껴지던 묵직하고 찌뿌둥한 느낌 대신, 뱃속이 텅 빈 듯한 가벼움과 함께 눈이 떠지는 날이 많아졌거든요.

 

 화장실을 가는 일도 예전보다 훨씬 수월해졌고, 무엇보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던 '가짜 배고픔'이 조금 줄어든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여전히 갓 구운 빵 냄새를 맡으면 이성이 흔들리고, 주말이면 뚱보균에게 먹이를 주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지만요. 당장 날씬해지진 못하더라도, 내 뱃속 정원을 가꾼다는 마음으로 이 미끈거리고 거친 음식들과 조금 더 친해져 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