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처음 몇 킬로그램이 쑥쑥 빠질 때는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기분이었습니다. 아침마다 체중계 숫자가 줄어드는 걸 보며 "나도 하면 되는구나"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차 있었습니다. 가벼워진 몸놀림에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거울 속의 내가 왠지 어제보다 더 잘생겨 보이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딱 한 달 전부터, 제 체중계는 마치 고장난 것처럼 똑같은 숫자만 띄우고 있습니다. 어제보다 적게 먹고,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운동장 한 바퀴를 더 뛰었는데도 숫자는 소수점 자리조차 바뀌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기계가 고장 났나?" 싶어 배터리를 새 걸로 갈아 끼워 보고, 바닥 수평까지 엄격하게 맞춰봤지만 변하는 건 없었습니다.
이 '정체기'라는 녀석은 정말이지 사람 진을 다 빼놓습니다. 노력이 보상받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면, 참았던 식욕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그냥 다시 예전처럼 살까?"라는 나약한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게 됩니다. 퇴근길 아파트 상가에서 풍겨 나오는 고소한 치킨 냄새가 평소보다 열 배는 더 치명적으로 느껴지고, "어차피 안 빠지는데 그냥 먹자"는 반항심이 그 동안 참아왔던 제 의지를 꺾으려고 기를 씁니다. 오늘은 제가 이 지옥 같은 정체기 한가운데서 어떻게 멘탈을 붙잡고 있는지, 그리고 이 시기가 사실은 우리 몸이 '정상'으로 돌아가려는 치열한 노력이라는 점을 진솔하게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우리 몸의 방어 기제인 '세트 포인트'
우리 몸에는 '세트 포인트(Set Point)'라는 묘한 개념이 있다고 합니다. 신체 시스템이 현재의 체중을 가장 안정적인 상태라고 착각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 소모를 강제로 줄이고 식욕을 높이는 일종의 방어 기제인 셈입니다. 급격하게 살이 빠지는 걸 우리 몸은 '기근'이나 '위기'로 받아들이고 대사량을 낮춰서 비상 체제에 돌입하는 겁니다. 이걸 알고 나니 제 몸이 미운 게 아니라, 오히려 "주인 살려보겠다고 참 눈물겹게 일하는구나" 싶은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완벽하게 식단을 지키고 닭가슴살의 그 퍽퍽한 질감이 잘 넘어가지 않아 억지로 물과 함께 삼키는 날에도 숫자가 그대로일 때면, 정말이지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밖엔 안 듭니다. 샐러드 드레싱 한 방울조차 조심했던 제 노력이 부정당하는 기분이 듭니다. 어떤 날은 너무 화가 나서 체중계를 발로 툭 차버리고 침대에 누워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문의들의 조언을 빌리자면, 이 시기는 체지방이 빠진 자리에 일시적으로 수분이 채워지거나 신진대사가 재정렬되는 필수적인 과정일 수 있다고 합니다. 단정적으로 "살이 안 빠진다"라고 결론 짓기보다, 내 몸이 지금 리모델링 중이라 잠시 간판을 내려놓은 상태라고 믿어보는 편이 정신 건강에 훨씬 이롭다는 걸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체중계의 숫자 노예에서 벗어나 '눈바디'에 집중
정체기가 길어지면서 제가 선택한 극단의 처방은 체중계를 아예 침대 밑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숫자에 일희일비하며 하루의 기분을 망치느니, 차라리 거울 앞에서 제 몸을 샅샅이 훑어보는 '눈바디'에 집중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신기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체중은 한 달 전과 똑같은데, 평소 꽉 끼어서 단추를 잠그기 버거웠던 바지 허리가 조금 더 헐거워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벨트 구멍이 한 칸 더 안쪽으로 들어갈 때의 그 묵직한 가죽의 느낌, 그리고 셔츠 가슴 부위가 예전보다 덜 팽팽해진 걸 느꼈을 때의 희열은 야속한 체중계 숫자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확실한 보상이었습니다.
근육은 지방보다 밀도가 훨씬 높아서 부피가 작기 때문에 몸무게라는 총량은 안 변해도 제 몸의 실루엣과 밀도는 서서히 변하고 있었던 겁니다. 운동 루틴에도 약간의 변화를 줬습니다. 매일 똑같은 강도로 러닝머신을 뛰면 몸이 적응해서 에너지를 덜 쓴다고 하길래, 평소엔 쳐다보지도 않던 고강도 인터벌 운동을 섞어봤습니다. 1분간 미친 듯이 뛰고 30초를 쉬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입안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몸을 몰아붙였습니다. 솔직히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욕이 튀어나올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 고통 뒤에 찾아오는 근육통이 "너 지금 정체기를 뚫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묘한 위안이 되었습니다. 완벽하게 짜인 계획보다는, 때로는 내 몸에 생소하고 거친 자극을 주는 '불완전한 시도'가 정체기를 깨는 열쇠일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가끔씩 유혹에 무너져도 자책 보다 따뜻한 위로 필요
다이어트를 지속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무너지는 순간이 옵니다. 저도 정체기에 지쳐서 지난 주말엔 결국 배달 앱의 유혹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기름진 족발과 매콤한 막국수를 입에 넣으며 느꼈던 그 찰나의 행복감 뒤에는, 역시나 거대한 자괴감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죠. "역시 난 의지박약이야, 이래서 숫자가 안 변했던 거야"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침대에 누웠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사람 사는 모습이지, 어떻게 기계처럼 매일 완벽할 수 있겠어?' 완벽함에 대한 지나친 강박이 오히려 이 정체기를 더 고통스럽고 길게 느끼게 만든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실제로 다이어트에 성공한 수많은 사례를 뒤져봐도, 정체기를 겪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건 다이어트의 실패를 알리는 신호가 아니라, 다음 하락장을 위한 '매물 소화 과정'이나 '숨 고르기' 같은 겁니다. 산을 오를 때도 계속 오르막만 있는 게 아니라 평평한 능선이 나오듯, 우리 몸도 잠시 쉬어갈 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단정적으로 "내일부터는 무조건 굶을 거야!"라고 외치기보다는, "어제 조금 실수했으니 오늘은 물 한 잔 더 마시고 조금 더 걷자"라는 부드러운 다짐으로 저를 달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체중계 숫자 때문에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날이 있다면, 그냥 잠시 그 위에서 내려오세요. 그리고 따뜻한 물에 족욕이라도 하며 그동안 무거운 몸을 지탱해온 본인의 발을 토닥여주는 편이 좋습니다. 정체기는 곧 끝날 겁니다. 여러분의 몸은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음 도약을 위해 열심히 지방을 태울 준비를 끝마치고 있을 테니까요. 그 변화의 순간을 믿고 조금만 더 버텨보는 편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