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행하는 다이어트는 모두 섭렵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가 결국 ‘간헐적 단식 16:8’의 영역에 발을 들였다. 저녁 8시부터 다음 날 정오까지 공복을 유지하는 것. 이론은 명쾌했고 결심은 단단했다. 그러나 현실의 오전 11시는 이론처럼 우아하지 않았다. 거울 속 삐져나온 옆구리 살을 보며 다졌던 각오는, 시계 바늘이 11을 가리키는 순간 바닥난 치약 튜브처럼 맥없이 쪼그라들었다. 이것은 내 몸의 생체 시계와 처절하게 싸우며 기록한, 어느 단식자의 ‘생존 보고서’다.
세포 청소라는 고상한 수식어의 이면
단식을 시작하고 가장 먼저 마주한 복병은 오전 11시만 되면 시작되는 뱃속의 ‘천둥소리’였다. 어느 건강 기사에서는 공복이 12시간 이상 유지될 때 세포가 스스로를 청소하는 ‘자가포식(Autophagy)’이 일어나 노화 방지에 탁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내 몸은 세포 청소는커녕 당장 에너지원을 내놓으라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뇌가 멍해지고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증상을 마주할 때마다 이것이 건강해지는 과정인지, 아니면 단순히 굶주림에 미쳐가는 과정인지 혼란스러웠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가벼움’은 실체가 없었고, 오직 ‘생존 본능’만이 지배하는 처절한 시간대만이 존재했다.
11:00 - 12:00, 이성이 마비되는 카운트다운
이 시간대의 기록은 문장으로 정제하기 어려울 만큼 파편적이고 본능적이다.
- 11:10 : 복부에서 시작된 진동이 사무실의 정적을 뚫고 나온다. 옆자리 대리님의 눈치가 보여 괜히 헛기침을 크게 해보지만, 빈속의 울림은 멈추지 않는다.
- 11:25 : 탕비실에서 누군가 굽는 토스트의 버터 향이 공기 중을 유영한다. 후각이 평소보다 수 배는 예민해진다는 뇌 과학의 이론은 다이어터에게 가해지는 잔인한 진화의 결과일 뿐이다.
- 11:40 : "오늘 점심 뭐 먹을까요?" 동료들의 화기애애한 메뉴 논의가 시작된다. 12시라는 금기에 묶인 나는 혼자만의 섬에 갇힌 기분이다.
- 11:50 : 생수만 벌컥벌컥 들이켜니 위장이 출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시계 초침은 마치 점성이 생긴 듯 느릿하게 움직인다.
완벽한 단식이라는 허상과 치졸한 금기 파괴
블랙커피 한 잔으로 식욕을 억제해보려 했으나, 시큼하게 쓰려오는 속은 둘째치고 주변의 온갖 냄새들이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결국 어제는 그 금기를 기어이 깨뜨리고 말았다. 11시 45분경, 도저히 참지 못하고 탕비실 구석에 버려진 사탕 봉지 밑바닥의 설탕 가루를 손가락으로 찍어 먹었다. 0.1g도 되지 않을 그 비루한 단맛이 혀끝에 닿는 순간, '살 것 같다'는 비참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이것은 고체가 아니니 단식을 망친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기만하는 나의 모습은, 단식의 고결함보다는 생존의 치졸함에 가까웠다. 사회적 고립을 피하려 "저는 12시 넘어서 먹을게요"라고 말할 때의 그 민망함까지 더해지면, 이게 과연 무엇을 위한 삶인가 싶은 회의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정오의 해방, 그리고 마주한 보상심리라는 괴물
드디어 기다리던 정오, 봉인 해제의 시간이다. 첫 술을 뜰 때 입안 가득 퍼지는 음식의 풍미는 가히 황홀하다. 따뜻한 현미밥 한 숟가락에 짭조름한 김 한 장만 올려도 미각이 폭발하는 것 같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이때부터다. 너무 오래 굶주린 나머지, 보상 심리가 발동해 폭식을 하게 되는 일이 잦았다. "16시간이나 참았으니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판단 오류가 결국 단식을 '반쪽짜리'로 만들곤 했다. 분명 전문가들은 채소부터 천천히 먹으라고 조언하지만, 눈이 뒤집힌 상태에서 영양 성분을 따지며 우아하게 샐러드를 씹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오후 내내 소화 불량에 시달리며 나의 미련함을 자책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나약함을 인정하며 길들여가는 시간
결국 간헐적 단식은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의 원초적 욕망과 타협하며 길들이는 과정이다. 무작정 16시간을 채우려다 폭주하는 것보다는,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완벽한 성공을 꿈꾸기보다는 14시간, 혹은 15시간에서 타협하며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이로울 수 있다.
내 몸의 시계는 고장 난 것이 아니라, 그동안 너무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져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오전 11시의 고비에서 흔들리고 있을 누군가에게, 너무 자책하지 마시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가끔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 사탕 가루 정도에 무너졌을지언정, 내일의 11시는 오늘보다 조금 더 평온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꼬르륵 소리를 자장가 삼아 버텨보는 것이다.